6 – 시(屍)

6 – 시(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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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구름-행성의-꿈-6-시屍
검은 구름 행성의 꿈-6-시(屍): A3 크기, 120g 종이


2143년 6월 16일

<시(屍)>

달의 색이 변했기에 그대가 신호한 시기라 해석하여
지금껏 숨어 있던 은신처를 벗어나
빛을 먹는 구름 사이를 부유하려 하오.

출신지를 잃어 이름도 없는 줄로만 알았던 내가
그대에게 보내는 시의 제목이 조금 기괴하다 하여
혹여 질책하지 말길 바라오.

오래도록 내 이름을 나의 언어로 불러줄 이가 없어
나의 관성적 존속 외에는 아무것도 꿈꾸지 못했소.
그러나 이제야 목적 있는 부유의 가능성이 열렸으니
시(屍)가 내 가장 희망적 표현이라면 믿겠소?

당신에게 이 편지를 전달하러 가는 길에
혹여나 내가 죽게 되더라도
나 한 번도 지금처럼 내가 한 선택에
확신을 품었던 적이 없소.

신은 없으므로, 당신이 정말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대 이름 내 모르나
어찌 부름에 답하지 않을 수 있겠소?

차마 적이라 부르지 못했던 자를 적이라 불러주니
함께할 동료 없이
동동 떠다니는 꽃만 벗으로 삼다 소멸할 줄 알았던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소.

그러나
검고 흰 것들이 지배하는 이 무채색 세상 속
유일히 색으로 빛나는 달 아래서 부디 우리 무사히 만난다면,
서로의 이름을 서로의 언어로 불러줄 그 날
잃었던 출신지가 무색하게
고향을 찾은 줄로 알며 기꺼이 살겠소.


© 2022 한아임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이름, 등장인물, 장소, 사건은 작가 상상의 산물이거나 허구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살아 있거나 죽은 사람, 기업, 회사, 사건, 혹은 지역과의 유사성은 전적으로 우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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